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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30 오전 12:21:55 입력 뉴스 > 가볼만한곳

조선시대 지배층 양반사회의 가옥(家屋), 양동마을과 독락당
경북도 Photo-Essay 출품,(落選作)
경북..



 

秋雲漠漠四山空, 落葉無聲滿地紅, 立馬溪橋問歸路, 不知身在畵圖中

가을구름은 온 사방에 자욱하니 깔려있고, 낙엽은 소리없이 땅을 덮으니, 다리위에 말을 세운 체 돌아갈 길을 묻는 차에, 내 자신이 가야할 곳을 잊으며 그림속에 있구나......”

 

이 땅 조선 건국에 한몫을 했으나 1398년 진법 훈련을 강화하면서 태조에게 절제사를 없애 관군(官軍)으로 합치고 왕자와 공신들이 나누어 맡고 있던 군사지휘권을 박탈한 후, 이방원을 전라도로, 이방번(李芳蕃)을 동북면으로 재배치를 주창하고 이행하려다

 

이방원 세력의 기습을 받아 방번과 방석, 남은, 심효생(沈孝生) 등과 함께 살해된 삼봉(三峰) 정도전의 삶의 덧없음을 노래한 그 시()처럼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왕조시대, 조선초기 4대당쟁을 겪은 선비들의 고충이었다........

 

하지만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중앙정부의 고관직을 비롯해 지방정부의 관리를 역임한 출신들의 마을에는 300여년이 넘는 가옥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일명 반촌(班村)에는 양반과 중인, 하인들의 삶과 그들이 혼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경주손씨의 입향조라 불리우는 양민공 손소(14331484)1450년경에 지었다는 서백당(書百堂, 중요민속자료 제23)은 세조5(1459)년 손소(孫昭)가 문과에 급제 후 중앙무대에 진출해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며 공신이 됐고

그의 둘째아들 중돈(仲暾,14631529)이 성종20(1489)년에 문과에 급제하며 명문가문을 이어 500여년이 넘은 역사에도 마루와 기둥, 행랑채가 세월의 변화에 따른 나뭇결이 틈새가 빠지는 등 약간의 풍파가 남았을 뿐 전체를 받치는 힘은 여전히 건재하다.

▲ 양동마을 경주손씨 종가 서백당

 
▲ 사백당 마루와 향나무

특히 서백당 당호와 지붕을 받치고 있는 서까래와 마루, 이것을 떠받치는 기둥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으며 집을 지을 당시에 심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서백당앞 마당의 향나무는 500여년째 이 골짜기를 내려보며 집을 지키고 있다.

 

이 서백당에서는 중종반정(1506) 직후 상주목사로 선정을 베풀어 1509(중종 4) 표리(表裡) 1()을 하사받고 좌승지, 공조, 예조참판과 1517년에 성절사(聖節使)로 명()에 다녀와 다시 공조와 이조판서, 세자시강원빈객을 거친 후,

 

도승지, 대사간에 경상, 전라, 충청, 함경도의 관찰사이후 우참찬을 하다 중종24(1529)년 사후에는 경주 동강서원(東江書院), 상주 속수서원(涑水書院)에 제향된 경절(景節),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14631529)과 그의 여동생이 여강(여주)이씨의 이번(李蕃)과 결혼 후 이언적(彦迪 14911553)이 태어난 곳이다.

 

성리학의 이설(理說)을 정립해 이황(李滉)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회재(晦齋)10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숙인 손중돈(孫仲暾)의 도움으로 1514(중종 9) 문과에 급제해 고관대작인 외숙의 기대에 부응했으리라.
▲ 관가정의 외관

 

경상, 전라, 충청, 함경도의 4도관찰사를 역임한 손중돈(孫仲暾)은 분가(分家)를 하면서 울산, 남영천방향에서 경주에서 합수한 강이 북으로 흐르다 북영천 고경과 분수령을 이루며 동쪽으로 흐르는 안강칠평천과 합류,

포항(영일)방향에서 남으로 흐르는 기계천, 안락천이 남으로 흘러 인동리에서 합류한 형산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말물자(勿字)지형의 맨 오른쪽 언덕위에 관가정(觀稼亭, 보물 제442)을 지었다.

 

지금은 포항-경주간 7번국도와 포항-영천간 28번국도에다 포항-부산을 연결한 동해남부선이 마을앞을 지나면서 곳곳에 건설된 교량으로 인해 조망이 가려져있으나 이 강둑이 없던 50여년 전만 해도 30여리떨어진 강 남쪽 경주가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지형에다 세운 것이다.
▲ 관가정 서쪽마루에서 바라본 경주, 안강들판

 
▲ 양반들의 여름철 거소인 관가정의 마루
▲ 관가정 마루에서

하지만 엎친데 덮친격이 포항-신경주간 KTX노선의 교각이 2010년에 건설되며 양동마을 중 특히 관가정에서 경주와 형산강방향 및 안강들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권이 악화일로에 처해있다.

   

관가정에도 서백당과 마찬가지로 바깥주인이 거주하는 온돌방과 연결된 곳에는 두칸짜리의 마루방이 건축돼 마루바닥 아래로 바람이 술술 통하는 공간이 병존(竝存)해 여름을 시원히 날 수 있도록 돼있다.

 

더군다나 양반집은 뒤로는 산이 서풍과 북풍을 막아주는데다 산과 언덕의 5부능선 이후에 위치해 바람이 잘 통할뿐만 아니라 경주방향에서 들어오는 물이 마을로 밀고 들어오더라도 물난리 걱정을 하지않아도 될 곳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비가 많이 내리는 하절기동안 경주 감포의 동쪽사면(斜面), 울주군 언양의 북쪽, 영천시 임고와 고경의 서쪽사면에서 밀려드는 남쪽에서 북으로 흐르는 강물이

북쪽에서 내려가는 수량(水量)의 몇배가 된 관계로 남쪽의 물길이 북쪽으로 밀고들어와 눈에 보이는 모든게 바다같은 강이었으며 둑이 건설되기 전에는 양동리 마을안쪽까지 수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양동마을 초가

 

노비제도가 해체되기 직전인 180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250여호에 달했던 양동마을은 양반집 한가구에 35호씩의 하인집이 양반가옥 아래위치해 주인이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은 곳에 거주하는 형식이었다.

 

.여름.가을.겨울과 눈.비를 걱정없이 지낼 수 있었던 양반집에 비해 하인들의 집은 언덕아래 평지에, 마루와 별채가 없는 홑집의 초갓집으로 더위를 피하기위해 별도의 여름나기용 평상을 갖추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회재(晦齋)1514(중종 9) 문과에 급제한 이래 외숙 손중돈의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를 거듭했으나 1530년 사간(司諫)으로 있을 때 김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그들 일당에 몰려 향리인 경주 자옥산(紫玉山)에 은거하며 학문에 열중했다.

 

 혼자만으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자옥산에서 흘러내리는 자옥천 옆에 독락당(獨樂堂)을 지었던 것이다.

▲ 여강이씨의 종가 무첨당

 
▲ 무첨당 마루에 걸린 편액인 좌해금서와 무첨당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중앙의 벼슬길에서 벗어나 고향마을 양동리에서도 30여리 떨어진 옥산리 계곡에서 물흐르는 소리, 새소리, 나뭇잎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소리 등 자연의 소리로 세상사를 잊으려 했는 듯 깊은 자옥산(紫玉山) 산골짜기에 집을 지었던 것이다.

 

특히 회재(晦齋)는 훈구파 등에 의한 몇차례의 모함으로 중앙정치에서 서너차례 멀어진 3040대에 독락당(獨樂堂)울타리내에 인지헌(仁智軒), 양진암(養眞庵), 경청제(敬淸齊), 계정(溪亭) 등을 차례로 지으며 성리학 연구에 몰두했다.

 

특히 집안에서도 물흐르소리와 바람소리, 개울에 발담근 듯 자연속에 있는 듯한 바위위에 계정을 지었다.

이 정자는 하천바닥에서 23층 높이의 마룻바닥이었으며 이웃한 온돌식의 인지헌(仁智軒) 양진암(養眞庵)까지 지어 아무리 덥고 추운날씨일지라도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깊은 산골짜기 물가에 지었던 것이다.

▲ 독락당 뒷켠에 있는 계정의 마루와 양진암

▲ 계정옆을 흐르는 자옥천 풍경

 

고향땅 인근 옥산리 자옥천에 소나기 지나간 뒤의 물흐름이 좋은 여름철과 단풍잎이 물든 가을 숲은 자연을 즐기고 학문을 연구하기에 더 없이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인지상 임금과 중앙정치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즐기며 글을 써 계정의 좌우측 벽에 걸었다.

 

일찍 남편을 떠나보낸 홀어머니를 자주 찾기 위해 회재는 중앙정치 보다는 지방정치를 원했으며 영남관찰사 시절 중종임금이 하사한 99칸짜리 한옥 향단(香壇 보물 제412)을 양동마을에 지었고 국사(國事)를 보는 형을 대신해 어머니를 모시는 동생 언괄의 집 심수정(중요민속자료 제81)은 골짜기를 사이로 향단과 마주하고 있다.
▲ 99칸 한옥인 향단

 
▲ 회재의 아우 이언괄을 위해 지은 심수정

그러한 동생이 있었기에 회재는 더욱 國事에 몰두할 수 있었으며 벼슬길에서 물러날 때마다 독락당에서 자연을 즐겼다.

특히 한길 쌓인 눈의 무게를 못이겨 소나무가 부러지는 소리를 겨우내내 들었지만 어느듯 자옥천 얼음장 밑으로 물흐르는 소리가 들릴 즈음이면 행여나 패거리신료들의 종용으로 벼슬에서 내쳤던 왕의 복직어명을 기다리며 계절의 변화무상을 사서삼경 일고 주자학을 연구했다.

 

그때 회재는 특히 '맹자(孟子)''고자장(告子章)'을 읽으며 세월과 사투를 벌였다.

"天將降大任於斯人也:(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必先勞其心志:(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苦其筋骨:(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餓其體膚:(몸을 굶주리게 하고)/窮乏其身行:(그 생활은 빈곤에 빠뜨리고)/拂亂其所爲:(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是故 動心忍性:(그 이유는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며)/增益其所不能:)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 온돌방이 아닌 여름나기용 마루형식인 독락당의 본당

▲ 독락당 뒷마당인 양진암과 붙은 마루인 계정

정사(政事)와 임금을 보필하며 피와 땀, 눈물을 흘렸듯이 소나기가 온 산천을 씻어내릴 것 같은 황톳물이 계정(溪亭)옆 골짜기를 휩쓸고 간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소름이 돋을 것 같은 추상같은 왕의 명()

 

1498(연산군 4)무오사화(戊午士禍), 1504년의 갑자사화(甲子士禍), 1519(중종 14)기묘사화(己卯士禍)수백명의 목숨들이 사라진 당쟁을 떠올리며 숲속의 바람소리로 모기떼와 같은 사악한 간신배들의 힘든 기억들을 이겨냈다.

 

외숙부에게서 들은 두 번의 사화(士禍)와 직접 겪은 기묘, 을사사화를 통해 옥산리의 독락당과 양동리 향단, 무첨당은 대문에서 이중삼중의 켜켜이 쌓은 담이 혹시나 모를 사악한 간신배들의 후환을 염두에 둔 대비책이며 조정중신 출신의 거처를 반대파가 서너차례 야탐을 했을 지라도 찾아내기가 어려운 구중심처인 곳이니 현장에서 안내받지 않으면 찾기 어려우리라.
▲ 자옥천에서 본 계정과 인지헌, 양진암 풍경

 
▲ 자옥천 바위위에 지은 계정, 인지헌과 그옆 공간인 양진암 

또한 개울물에서 사람키로 두세길이나 높이 만든 인지헌(仁智軒)과 양진암(養眞庵)은 하인들조차도 정확한 처소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독락당 옥산정사를 앞으로 하고 허름하게 위장했으니 외부인이 잠입하기가 더욱 어려운 법이었다.

 

특히 여름의 노도(怒濤)와 같은 수차례의 폭우와 수해를 이겨낸데다 인지헌(仁智軒)과 양진암(養眞庵)은 요새중의 요새니 그 어떤 인마(人魔)와 맹수조차도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안전은 물론 추위와 더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공간이었다.

 

그 무덥던 더위도 지나가고 벼베기를 하느니, 감을 따느니 하인들이 바쁘게 움직이더니 벌써 정자마루의 차가움이 느껴질 만큼 형산강 옥산리 골짜기를 타고 올라오는 소슬함이 이니 또 다시 어질고 지혜로움을 창조하는 공간, 인지헌(仁智軒)으로 들어가는 계절이다.

 

팔랑거리던 나뭇잎이 낙엽이 되어 땅위로, 자옥천 물위로 추락하며 흩날려 계곡으로 빨려들고 돌과 나뭇자락에 걸린 잎들은 작은 물웅덩이를 만드니 고독만큼이나 조정과 신료들에 그리움과 회한(悔恨)이 웅덩이 속에 잠기는 낙엽마냥 시간이 흘러갔다.

 

1514(중종 9) 문과에 급제해 경주 주학교관(州學敎官) 이후 성균관전적, 인동현감, 사헌부지평, 이조정랑,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하다 1530년 김안로의 등용반대로 자옥산에 묻힌 후 그의 몰락과 함께 1537 중부시첨정 시강관 및 교리와 응교에 복직했다.

 

이후 1539년에 전주부윤 이후 이조, 예조, 병조판서, 경상도 관찰사, 한성판윤을 거쳐 1545년 명종이 즉위하자 좌찬성으로 국사를 관장하며 서계10(書啓十條)를 올려 윤원형(尹元衡)이 주도한 을사사화의 추관(推官)으로 임명되었으나 또다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깊어가는 계절만큼, 조정에서 불러 독락당을 떠난다 할지라도 언제다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어지러운 시절이니 임금이 부르는 것 조차 반갑지도 않았으리라.

 

하지만 추관에서 물러난지 2년후 1547, 끝내 회재는 윤원형과 이기(李芑) 일파가 조작한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무고하게 연루, 함경도 강계로 유배됐다.

 

더위도, 추위도 모든 것을 원만히 해결하며 사림을 키울 후학들을 양성할 수 있는 서원을 세울 자리는 봐두었건만 이를 실행도 하지 못한 체......

 

옥산서원(玉山書院,사적 제154)은 그가 죽은 20여년 후 이기철학(理氣哲學)에 관한 이론적 체계를 최초로 완성한 성리학의 선구자이자 대철학자 이언적의 27세때 지은 태극논변(太極論辯) 읽고 스스로 후학이라고 한 퇴계이황과 후손 등이 주장해 1572년에 건립됐다.

 

독락당에서 300여미터 아래있는 서원 역시도 더위와 추위를 서로 보완할 수 있도록 온돌식과 마루식 구조를 병행해 지었으며 특히 서원앞 너럭바위는 수백명이 앉을 수 있을만큼 넓은데다 자옥산과 도덕산에서 사시사철 흘러내린 물이 학문을 연구하고 수양을 쌓는데 이보다 좋은 경치와 장소는 없었으리라.
▲ 옥산서원의 본당인 구인당

 
▲ 구인당 맞은편에 서원의 입구인 무변루 풍경

 

 

세상은 혼탁하지만 그때그때의 상황을 글로 표현했던 회재는 司諫院 司諫으로 있다가 좌천되기 바로 직전에 쓴 시인 直薇垣(직미원) 등을 통해 玉漏丁東報五更(물시계소리는 五更를 알리는데)/沈邊凉月透窓明(벼개가의 서늘한 달빛 창문을 밝게 하네)/關心宗社安危事(종사의 안위사가 더욱더 걱정되어)/耿耿終宵夢不成(안절부절 밤새도록 잠 못 이루네) 심정을 표현했다..

 

특히 독락당에 은거해 학문에 전념하던 때의 시 觀心(관심)은 성리학의 대가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空山中夜整依襟 빈산 한밤중에 옷깃 여미고 앉으니一點靑燈一片心 한점 푸른 등불 내 마음에 비치네.本體己從明處驗 본체야 세상에서 이미 경험했으니眞源更向靜中尋 진리의 근원을 고요함 가운데서 찾으리라.

 

이와함께 47세에 재등용과 무고로 귀양을 가던 때 혼란한 정치를 개탄한 시 足聯句(족연구)’에는 자연과 세상사의 황망을 그대로 표현냈다.

 

江沈山影魚驚遁 강에 산 그림자 깊으니 고기 놀라서 숨고峯帶煙光鶴()산에 뿌연 기운 가득하니 학도 두려워하네物寒固宜述幻忘 만물이 막히어 모두 허황으로 미혹되니人通何事誤東西 사람들은 어찌 동서도 분별 못하는가?
▲ 서원앞 자옥천과 너럭바위, 외나무다리

 

1년중 절반이 서릿발이 서있는 흉흉하고 차디찬 조선 북쪽땅 끝, 여진족과 마주한 46진의 국경지 강계에서 1553년 세상을 떠났다.
▲ 옥산서원앞 너럭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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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활 기자(sea4seaso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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